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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유토피아를 찾는 분홍 말의 우화_허나영(미술비평)

“꿈이 뭐야?”

어릴 때부터 많이 듣는 질문이다. 가수나 연예인이 되고 싶거나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은 꿈까지 다양한 꿈을 어릴 적부터 품고 산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진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꿈일 뿐’이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간다. 그걸 어떤 이는 철이든 것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현실에 안주한 것이라 판단하기도 한다. 과연 꿈은 이룰 수 없는 것일까. 다다를 수 없는 것일까. 어딘가에 있는 그 꿈을 임수빈은 핑크 유토피아로 그리고 있다.


핑크 유토피아, 닿을 수 없는 곳

핑크라는 색과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을 지칭하는 두 단어가 결합한 이 단어는 임수빈의 작품과 함께 어우러지며 묘한 긍정을 하게 한다. 그가 말하는 그곳이 어디인지 무엇인 지는 확실치는 않으나 상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단지 개인별로 구체적인 공간 설정은 다르겠지만. 임수빈이 그리고자 하는 핑크 유토피아 역시 ‘아직 닿을 수 없는’ 장소이면서도 ‘안전하고도 행복한’ 공간이다. 하지만 혹자는 현실에서 결코 찾을 수 없는 이러한 공간에 대해 치기어리다 꼬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은 훨씬 각박하고 핑크빛이란 찾아볼 수 없는 가혹한 곳이라 생각하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임수빈이 이러한 현실을 배제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핑크 유토피아’라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그곳을 그림 속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임수빈에게 핑크는 그저 예쁜 색이 아니다. 흔히 여성적이며 장식적이라 생각하는 색이지만, 작가가 느끼는 핑크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갈망해온 사랑의 색이자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이 갖고 싶은 마음의 온도이기도 하다. 사회적 성인 젠더로 인해 선택된 색이 아닌 것이다. 그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언젠가는 채우고 싶지만, 다가갈수록 결핍이 일어나는 ‘욕망하는 대상’의 색이다. 그 대상의 모습은 사랑과 따듯함, 그리고 행복으로 충만한 상태이고 그렇기에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결코 닿을 수는 없기에 계속해서 욕망하며 끝없이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임수빈이 그린 그림 속 모습은 완전한 핑크 유토피아는 아니다. 오히려 핑크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여정 속에서 발견해나가는 핑크빛 단서들과 같은 것이다. 아직 도착하지 못했으니 그 곳이 어떤 지 알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할 것이다. 유럽의 어느 고성의 사진을 보며 언젠가 여유로운 여행을 꿈꾸는 듯, 핑크 유토피아에 도달하고 싶다는 작가의 욕망은 그곳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만나는 핑크빛 흔적들로 표현된다.


유토피아로 가기 위한 여정

그간 임수빈이 해온 작품들은 그 어느 곳에 있을 핑크 유토피아를 꿈꾸는 공간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시기별로 핑크 유토피아를 향한 여정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에메랄드 캐슬을 찾으러 가는 도로시처럼 그림 속 장면들은 매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거대한 꽃이 피어있기도 하고 편안한 소파가 있는 집이기도 하다. 그리고 굵은 주름을 가진 나무둥지들이 빽빽한 정글이었다가 푸른 잎이 가득한 초원지대가 나타나기도 한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한 공간이지만 모두 초현실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 공간들을 구성하는 그림 속 자연물들은 생명을 지닌 자연과는 다르다. 임수빈은 커다란 나무와 풀로 둘러싸인 그림 속 숲을 자연으로 개방된 공간이 아닌 폐쇄된 공간으로 생각한다. 외부와 자신을 차단하는 벽이자 창살인 셈이다. 하지만 자유를 잃고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안전하게 쉬고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그리고 그 숲 속에 분홍 말들이 있다.

분홍 말은 소파에 편히 기대기도 하고 등을 대고 누워있기도 한다. 그리고 간혹 초록 말이나 얼룩말과 만나기도 한다. 여기서 분홍 말은 작가의 분신이다. 그래서 마치 일기처럼 작가에게 휴식이 필요했던 시절에는 쉬고 있는 말의 모습으로, 친구가 필요할 때에는 다른 말들과 교류를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말들은 모두 눈이 없다. 임수빈은 처음 말을 그렸을 때에는 소통의 피로함을 지우고 온전한 휴식을 표현하고자 눈을 지웠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이러한 모습은 작품 속 분홍말의 정체성이 되어 버렸다.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과연 무엇을 봐야할지 모르는 현대인처럼, 작가 역시 그러한 불안함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홍말은 계속 움직인다.

혼자 걷거나 쉬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짐을 나눠지고 걷기도 한다. 머리에 불을 켜고 걷기도 하고 함께 물을 먹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을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는 동반자를 찾는다. 그리고 아무리 거친 풍파에서도 서로 얼굴을 맞대며 이겨낼 수도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일 것이다. 함께 인생의 짐을 나눠지는 가족,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 그리고 사랑을 나누는 정인도 그 관계에서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조금씩 다를 뿐, 인생에서 접하는 이러한 관계를 임수빈은 분홍 말의 우화로 보여준다.

최근 작업에서는 보다 작가의 내면의 이야기를 한다. 아름다운 색이지만 거친 마티에르로 표현된 짐 덩이로 인해 분홍 말은 말 못한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초록 풀들을 흔들고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운 초를 꺼트릴 바람을 피해 웅크리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와 평온함을 가지기도 한다. 또한 현실의 두려움을 피해 안전한 곳에서 쉬고 있지만, 현실과 연결을 해주는 작은 새에게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듣곤 하는 젊은 작가의 호기심을 엿볼 수도 있다. 이렇듯 작가는 동화적인 상징으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담히 그린다.


분홍 말은 오늘도 걷는다.

어딘 가에 있을 핑크 유토피아를 향해 자신의 인생을 가꾸어나가며 한 발 한 발 분홍 말은 조심히 걷는다. 간혹 꽃에 정신이 팔리기도 하고 하늘에 총총히 내려앉은 별을 보며 쉬기도 하지만 핑크 유토피아를 찾는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그 곳은 예술가로서 꿈이 실현될 곳이기도 하고 한 인간으로서 찾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 어머니와 떨어진 후 완전한 충만을 가지지 못하듯, 임수빈의 분홍 말은 끝없이 자신의 완전한 자아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풍경을 보게 될 것이며 여러 사건을 겪게 될 것이다. 영화 <파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반신반의하면서도 귀 기울여 들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임수빈의 분홍 말이 갈 여정 역시 기대하게 된다. 분홍 말이 앞으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고 그럴 때 어떠한 감정을 갖게 될지 말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우리 내면의 여정은 앞으로 어떠할 지에 대한 고민과 꿈도 가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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